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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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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막리(東幕里)

[동막]【리】본래 제천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동막(東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노항(魯抗), 막대동(莫大洞), 평촌(坪村), 저곡(楮谷), 기동(基洞)을 병합하여 동막리라 해서 성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제천군 금성면에 편입됨. 군부대 주둔지역으로 마을 전체가 이주함.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승격으로 제원군 금성면 동막리가 되었다가 1995년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가 됨. 강상곡-비(姜商谷碑)【비】명지리에 있는 충목곡(忠穆谷) 상곡(商谷)의 비. 기-동(基洞)【마을】→ 텃골. 남-동막【마을】→ 벌말. 노구라니[노항]【마을】→ 동막 남쪽에 있는 마을. 늙은 개가 앉 아 있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 노구라니-못【못】→ 노구라니 동쪽에 있는 못. 노-항(魯抗)【마을】→ 노구라니. 느르-번 고개【마을】→ 대랑리의 ‘느르번고개’. 대-동(垈洞)【마을】→ 텃골. 동-막(東幕)【마을】→ 동막리. 막대-골[막대동]【마을】 동막 동쪽 막바지 산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막대-동(莫大洞)【마을】→ 막대골. 벌-말[평촌, 남동막, 원동막]【마을】①동막리의 원 마을. 벌판에 있음. ②송학면의 북동막과 구별함. 원-동막(元東幕)【마을】→ 벌말. 저-곡(楮谷)【마을】→ 저실. 저-실[저곡, 적곡]【마을】막대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 닥나무가 많았으며, 지형이 옥녀가 피리를 부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 구한말 소년 의병 홍사구의 출생지라고 함. 적-곡(笛谷) 【마을】→ 저실. 종-동(種洞)【마을】벌말 서북쪽에 있는 마을. 어느 해에 몹시 가물어 이웃 동네는 모두 흉작이 되어서 볍씨도 구할 수 없 었는데, 이 곳에 종자가 있었다 함. 텃-골[기동, 대동]【마을】종동 서쪽에 있는 마을. 동막리에서 맨 먼저 터를 잡아 이루어진 마을. 평-촌(坪村)【마을】→ 벌말.

금성면(錦城面)

본래 청풍군 의 북쪽이 되므로 북면이라 하여 북진(北津), 성내(城內), 월굴(月窟), 백석동(白石洞), 중리(中里), 포전(浦田),위곡(渭谷), 월림(月林), 진동(榛洞),구룡(九龍), 적덕(赤德), 사창(社倉), 활산(活山), 주포(酒浦, 소사(小社), 대사(大社), 칠전 (漆田)의 16 개 동리로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같은 군 동면(東面)의 성동(城洞), 천상(川上 상천 하천), 능강(綾江), 도화(桃花), 교동(校洞), 학현(鶴峴), 동진창(東津倉)의 7개 동리를 병합하여 금수산(錦繡山)의 이름을 따서 금수면(錦繡面)이라 하에 제천군에 편입되고, 북진, 성내, 구월굴, 구룡, 적덕, 진리, 사곡, 활산, 위림, 포전, 중전, 교리, 능강, 학현, 상천, 하천, 도화, 성리의 18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17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성산면(城山面)의 강제(江諸), 명지(明智), 산곡(山谷), 월림(月林), 양화(陽化), 대장(大壯), 동막(東幕), 대량(大郞), 의 8개 리를 병합하여 금수와 성산의 이름을 따서 금성면이라 하여 2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29년 10월 14일 충북도령(忠北道令) 제 13호에 의하여 도화, 능강, 상천, 성리의 5개 리를 떼어 수산면(水山面)에 넘겨 주고, 1947년 1월 31일 충북도령 제 36 호에 의하여 북진, 교리, 학현의 3개 리를 청풍면에 넘겨 주어 1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제천시로 승격되면서 제원군 금성면으로 됨. 1983년 2월 15일 강제리, 명지리, 산곡리를 제천시에 넘겨주고 15개리를 관할하다가, 1985년 충주댐 수몰로 성내리, 월굴리 대부분이 수몰되고 중전리 일부가 수몰됨.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이 됨.동쪽은 단양군 적성면과 매포읍, 서쪽은 청풍면, 남쪽은 수산면, 북쪽은 화산동 봉양읍과 닿아 있다.

구룡리(九龍里)

[구론, 구곡]리【리】본래 청풍군 북면의 지역으로서, 아홉 굽이가 진 냇가가 되므로 구론 또는 구곡(九谷)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자감동(自甘洞), 장터, 한내를 병합하여 구룡리라 해서, 금수면에 편입되었다가, 1927년 금성면에 편입 됨. 금성면 소재지로서, 금성면 사무소, 금성경찰파출소, 금성초등학교, 금성우체국, 금성농협 등이 있다. 구곡(九谷) 【마을】→ 구룡리 구론 【마을】→ 구룡리 구룡리문화마을【마을】 권영상-묘(權領相墓)【묘】구룡리에 있는 조선 헌종(憲宗) 때 영 의정 권 돈인(權敦仁)의 묘가 있었는데 이장하여 감. 금성초등학교【학교 금성감리교회【교회】 대문-밖 (대문외)【마을】구룡리에 딸린 마을. 대문-외 (竹門外) 【마을】→ 대문 밖. 대문은 큰 문이 아니고 대나무로 엮어 만든 문을 가리킴. 마을자랑비【비】솟대거리에 마을의 유래를 밝힌 마을자랑비가 섰고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돌장승이 서 있다. 무기-봉(霧起峰)【산】큰 말 동쪽에 있는 산. 비나 눈이 오기 전 에 먼저 이 산에 안개가 낀다고 무기봉이라 부른다. 박도수 고가【고가】골말에 있는 국가민속자료 137호의 옛날 집. 복지회관【회관】장터거리에 있는 복지회관. 1990. 11.10 개관함. 새장텃-거리【마을】→ 장터. 솟대거리 【마을】초등학교 앞 마을. 솟대는 과거급제자가 있었다는 표시였다 함. 자감-동【마을】→ 잘개밋 골. 잘개밋- 골[자감동]【마을】장터 동쪽에 있는 마을.무논이 많아서 얻은 이름. 장-터[장텃 거리,새장텃 거리]【마을】큰말 동쪽에 있는 마을. 100여년 전에 장이 서면서 이루어졌으나 제천 장과 청풍 장 이 가까이에서 서므로 이 곳의 장은 저절로 폐지됨. 장텃-거리【마을】→ 장터 지석묘【고분】구석기 유적으로 추측되는 지석묘 2기와 입석묘1 기가 금성초등학교 교정에 있다. 진주류씨 효자각【정려】청풍 양평에 옮겨 옴. 큰-말【마을】구룡리에서 가장 큰 마을 평짓-뜰【들】큰말 동북쪽, 평지에 있는 들. 하수도시설【수도】문화마을 내에 96.5.12 설치한 하수처리시설. 한-내¹[한천]【마을】큰 말 서북쪽에 있는 마을. 찬물이 있음. 한-내²[한천]【우물】한내에 큰 샘. 물이 차고 맛이 좋음. 한-천(寒川)¹【마을】→ 한내¹. 한-천(寒川)²【우물】→ 한내².

대장리(大壯里)

[대장, 대장이,대쟁이]【리】본래 제천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장군대좌혈(將軍大座穴)이 있다 하여 대장(大壯)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가곡(街谷), 고마창(高馬倉), 금곡(金谷), 월곡(月谷), 둔전곡(屯田谷), 천령곡(天靈谷)을 병합하여 대장리라 해서 성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금성면에 편입됨. 1980년 제천읍이 제천시로 승격되면서 제원군 금성면 대장리가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 대장리가 됨. 가-곡(街谷)【마을】→ 거리골. 거리-골[가고, 거리담]【마을】둔전골 남쪽 길가에 있는 마을. 거리-담【마을】→ 거리골. 고마-창【마을】천역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 금-곡【마을】→ 금실. 금-실[금곡]【마을】고마창 서남쪽에 있는 마을. 길마재【고개】양화리에서 대재이로 넘어가는 고갯길. 1987년 확 포장하여 지방도로 개통을 함. 다락-골[월곡]【마을】고마창 서쪽에 있는 마을. 대장(大壯)【마을】→ 대장리. 대장리 경로당 【경로당】 1994년 12월 10일 준공됨. 대장리 마을회관 【회관】1981년 8월 15일 준공됨. 대장이【마을】→ 대장리. 대장-재【고개】대장 북쪽에서 동막리로 가는 고개. 대쟁이【마을】→ 대장리. 둔전-곡【마을】→ 둔전골. 둔전-골[둔전곡, 둔정골]【마을】거리골 북쪽에 있는 마을. 투구봉 밑이 되며, 지형이 장군이 진을 치고 싸우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둔정-골【마을】→ 둔전골 월-곡(月谷)【마을】→ 다락 골 이동통신중계탑 【통신】 011, 017, 016, 018 무선통신 철제 중계 탑.2001년 3월 설치. 천령-곡【마을】→ 천역골 천력-골[천령곡]【마을】둔전골 북쪽에 있는 마을. 비가 오면 물 이 나지 않고, 가물면 물이 잘 나는 샘이 있다 함. 투구-봉【산】둔전골 위에 있는 산. 투구처럼 생겼다 함.

사곡리(社谷里)

[사곡, 사창골]【리】본래 청풍군 북면의 지역으로서, 조선 시대 사창(社倉)이 있었으므로 사창골 또는 사곡(社谷)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사곡리라 하여 금수면(錦繡面)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금성면에 편입됨. 1980년 제천시 시승격으로 제원군 금성면 사곡리가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 사곡리가 됨. 각시바우【바위】소사창 동쪽 월림쪽으로 각시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 경의대바위【바위】사곡 영당앞에 있는 둘레 20m 5평넓이의 바위에 경의대라고 음각되어 있음. 아이들 놀이터가 됨. 대-사창(大社倉)【마을】사곡 서쪽에 있는 큰 마을. 문화생활관【회관】마을 중심에 자리잡은 다목적 마을 회관. 실내운동기구를 비치하고 노년층에서 이용하고 있다. 범-바우[호암]【바위】대사창 서쪽 골짜기에 있는 바위. 옛날에 이 바위에 범이 자주 나타났다 함. 사곡영당【사당】병산-영당(屛山影堂) 금병골에 있던 사당. 1947년 덕산면 용화리에 창건하여 주자(朱子)와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의 영정을 봉안하고,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 회당(晦堂) 윤응선(尹膺善)을 추배하였는데, 1951년8 청풍면 장선리에 옮겼다가 직당 신현국 학재 이원복 해산재 양재명 양암 류지혁을 추배함.1994년 5월 10일 금성 산척간 도로이설로 금성면 활산리 산401번지로 옮겨지움. 산 지번으로 활산리이나 금성면 사곡리 마을과 가까이 있음. 건물구조는 목조초가 삼간, 측면 2간의 맛배집인데 토석 혼축 담장을 함. 사-곡【마을】→ 사곡리. 사창-골【마을】→ 사곡리. 사창 터(社倉-)【터】사창골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창 터. 삼거리 고개【고개】사곡 북쪽에서 봉양면 삼거리로 가는 고개. 고개가 2개인데 송치고개와 덧재임. 소사창(小社倉)【마을】사곡리 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 솔-티【고개】→ 소사창 서북쪽에서 봉양면 삼거리로 가는 고개. 송장골【마을】솔티아래 있는 골짜기, 공동묘지로 통하는 상여길. 신랑바우【바위】대사창과 소사창의 경계지점에 솔티고개 쪽으로 있는 바위. 은행나무【고목】군나무 제8호로 지정된 사곡리에 있는 은행나무. 수령750년, 높이 28m, 둘레 6.9m, 수목면적 265㎡ 이다. 이 나무가 마을에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 동제를 올리고 있다. 호암(虎岩)【바위】→ 범바우.

성내리(城內里)

[성안, 성내, 성두둑]【리】본래 청풍군(淸風郡) 북면(北面)의 지역으로서, 작성산(鵲城山) 안쪽이 되므로 성안, 성내(城內) 또는 성두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웅암(熊岩), 주포(酒浦), 은행정(銀杏亭)을 병합하여 성내리라 해서 제천군 금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85년 충주댐 물가두기 로 인하여 안말 안암이 방우리 은행정이 수몰되고 봉강서원 터에 10여 호가 이주하여 새 마을을 형성하고 곰바우 담바우를 합쳐 성내리로 남게 됨. 수몰 당시 200여호 마을로 큰 농촌이었는데 이제는 20호미만이 살고 있다. 간이상수도 【수도】성내리 식수원을 해결하는 간이 상수도 2곳. 갈-골[곶집골] 【수몰마을】성내리 북쪽에 있는 옛날 마을. 상여 곶집이 덩그마니 있었고 안암 숲이 우거졌을 때는 성내리 마을로 들어오는 동구였다함. 갈마구지 절【사찰】선암,새로 조성된 성내마을 남쪽으로 갈마구지 능선에 봉선사 보다 약간 늦게 지어짐. 곰-바우¹[웅암]【마을】안말 서북쪽에 있는 마을. 뒤에 곰바우가 있음. 곰-바우²[웅암]【바위】곰바우 됫 산 밑 개울 강에 있는 큰 바위. 곶집거리【수몰마을】안말 중간 마을로 곶집이 있어다 함. 금수산송어횟집【음식점】무암사 계곡 입구에 있는 회집, 송어회가 유명함. 까치성 터【터】작성산성터. 담안【수몰마을】 봉명암의 서남쪽의 마을. 두둑말【수몰마을】안말 남쪽의 들판 가장자리 마을. 청풍부의 곡식창고가 있었다 함. 마을앞 길 【길】제천과 청풍을 연결하는 597지방도. 무느실【수몰마을】안말에서 곰바우 가는 중간에 있던 마을. 무림사 터(霧林寺-)【터】무암사 서쪽에 있는 무림사의 터. 신라 헌덕왕(憲德王) 때 창립하였다 하며, 두 개의 부도 사리탑이 있으며, 일곱 층의 전탑(?塔)이 있었다 함. 무림사지 기념 각석(霧林寺址記念刻石)【바위】무림사 터에 있 는 바위. 깎아 세운 듯이 솟아 있는데, 바위 위에 ‘至誠極樂情 靈岩三韓時霧林寺記念 甲申二月十一日’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음. 무암-사(霧岩寺)【절】성내리 동쪽 금수산 밑에 있는 절. 기와에 건륭(乾隆) 5년(1740)에 중수한 것이 기록되어 있음. 싸리나무 기둥과 사리탑. 부도 네 개가 있으며 절 마당 건너 편에 노장암이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안개가 끼이면 잘 보인다 하여 절 이름을 무암사라 하였다 함. 무암계곡[무암꼴, 무암사 계곡] 【계곡】성내리에서 무암사를 향하여 가는 계곡 좌우에 골짜기가 많고 골짜기 마다 이름을 갖고 있다. 봉명암 서쪽에서 부터 동쪽으로 올라가며 새목재까지, 다시 새목재에서 내려오 며 지명을 늘어 놓으면 음지 쪽으로 보름골, 큰음뎅이, 아래갈마구지, 웃갈마구지, 빈덕바위, 방아방골, 밤나무골, 감자골, 좃통골, 보지골, 동대골, 어둠골, 모래골, 숙맥골, 지추골, 작은탑골, 노장바위. 문지방 너머, 큰탑골, 사다리골, 안개바위, 큰탑골 물내치기, 산새리골, 남근석이 있는 고무골, 노삼바골, 은 정골, 다리골, 이름없

양화리(陽化里)

[양화, 사린뱅이, 사리방이, 사리방리]【리】본래 제천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사린뱅이 또는 사리방리(沙里防里)라 하였는데, 상스럽지 못한 일이 자주 일어나므로 양화(陽化)로 고쳤다 하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때 양지말, 음지말, 심곡리를 병합하여 양화리라 해서 제천군 성산면에 편입됨.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시승격으로 인하여 제원군 금성면 양화리가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가 됨. 거문-바우【바위】날기실 위 길가에 있는 바위. 거무(거미)처럼 생겼다 함. 구진-골【골】→ 구진 간이 기르매-재¹ [지르매-재]【마을】기르매-재 밑에 있는 마을. 기르매-재² [지르매-재]【고개】음지말 동쪽에서 단양군 적성면으로 가는 고개. 날기-실 [일기곡]【마을】 웃양지말 북쪽에 있는 마을. 지대가 높음. 다른-고개【고개】 날기실 서북쪽에서 산곡리로 가는 고개. 먼지-미【산】 지프실 안에 있는 산. 마을에서 외따로 멀리 떨 어져 있어 불려진 이름. 미륵-불 [彌勒佛]【미륵】양화리에 있는 돌 미륵. 높이 5척(1.5㎝), 가슴 너비 1.8척(54㎝) 사리방-리 [沙里防里]【마을】→ 양화리. 사린뱅이【마을】→ 양화리. 상-양지촌(上陽地村)【마을】→ 웃양지말. 상-음촌(上陰村)【마을】→ 웃음지말. 선녀-골[선

월굴리(月窟里)

[월굴]【리】본래 청풍군(淸風郡) 북면(北面)의 지역으로서, 법개 마을의 모양이 달모양으로 하고 있고 법개 입구에 동굴이 있어 달과 굴을 합성하여 월굴리(月窟里)라 하였다 함.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높은 다리, 배나뭇들, 석동골을 병합하여 다시 월굴리라 해서 제천군 금수면(錦繡面)에 편입되었다가,1917년 금성면(錦城面)에 편입됨.1980년 4월 1일 제천시 시승격에 따라 제원군 금성면 월굴 리가 되었다가 1985년 충주댐 공사로 마을 대부분이 수몰되고 석동골이 남아서 월굴리로 됨.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 월굴 리가 됨. 강릉김씨 가족묘원(江陵金氏 家族墓苑)【묘】석동골에 있는 강릉김씨 가족묘원. 8월에 모여 벌초하고 10월에 시제를 올림. 결매-소 [結買所]【수몰마을】→ 절매. 결매-촌 [結買村]【수몰마을】→ 절매. 고-교¹(高橋)【수몰마을】→ 높은 다리 고-교¹(高橋)【수몰마을】→ 높은 다리 고-교²(高橋)【다리】→ 높은 다리 굴바우등【언덕】한두실에서 노사리 골짜기로 나오는 비탈길. 금월봉(錦月峰)【명소】금성과 월굴리 사이에 있는 괴암산으로 새로이 등장한 명물. 예사로운 산이었는데 진흙(산화철 그 성분은 시멘트원료가 됨)을 채취하고 앙상한 바위만 남 았는데 그 형상이 기기묘묘하여 1999년부터 민관합작하여 관광 명소로 꾸며가고 있음. 높은-다리¹【수몰마을】→ 높은 다리가 있는 마을. 높은-다리²【다리】→ 절매 동북쪽에 있는 다리. 조선 시대 큰 돌을 괴어서 높이 놓았는데 장마로 유실되고 일제식민지 시절 콘크리트 교량으로 놓았다가 1985년 충주댐 수몰시 현대식 높은 다리로 만들어졌음. 닥고개【고개】닥나무가 많이 재배되던 곳이라 함. 달봉산【산】석동골에 있는 산, 반달모양으로 생겨서 붙여진 이름. 당두산【산】월굴리 1번지. 당두광산이 있었으나 폐광되고, 당두산 정상에는 군사용으로 추측되는 망대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함. 대덕산성터【성터】대덕산 천황사 뒷산 꼭대기 성터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음. 땅-고개[당고개]【고개】석동골에서 활산리 살미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에 살미 주민들이 모시던 당집이 있어 ‘당고개’로 불림 마당베미【논】논 모양이 둥글둥글하여 붙여진 이름. 목림소(木林所)【수몰터】월굴리에 있는 옛 하급 행정구획의 하나인 소가 있던 터. 문화류씨가족묘원(文化柳氏家族墓苑)【묘지】85년 수몰시 월굴리에 거주하던 문화류씨들이 타지로 이주하면서 당두산 아래에 조성한 가족공동묘원. 8월에 모여 벌초하고 10월에 시제를 올리고 있다. 배나뭇-들¹ [梨坪]【수몰마을】배나뭇들 옆에 있는 마을. 배나뭇-들²[梨坪]【수몰들】높은 다리 동북쪽에 있는 들. 배나무가 많았다 함. 벌-말 [坪村]【수몰마을】선돌배기 북쪽 들에 있는 마을. 벌-말 [坪村]【수몰마을】선돌배기 북쪽 들에 있는 마을. 법-개 [법포]【수몰마을】송내 북쪽에 있는 마을. 뒷 산에 법개사라는 절이 있었다 함. 사창(社倉)터【수몰터】월굴리에 있는 옛 사창 터. 삼동곡(三洞谷)【마을】→ 석동골. 석동-거리【마을】→ 석동골. 석동-거리【마을】석동골의 옛 이름. 900여평 밭이 3등분으로 나누어져 삼동골이라 부르다가 석동골로 부르게 되었다 함. 석동-골 [석공거리, 삼동곡]【마을】절매 서북쪽에 있는 마을.구룡, 월굴, 할산리로 가는 세 갈래 길이 있음. 1985년 수몰이후 잔존하는 월굴리 마을. 선돌-배기 [입석] 【수몰마을】송내 동쪽에 있는 마을. 선돌이 있음. 송-내 [송천] 【수몰마을】월굴리의 중심 마을.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내(금성천)가 흐름. 쉬실-골【수몰골】송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쇠를 녹이는 대장간의 터였으며,양지바르고 편편하여 나무꾼의 쉼터가 됨. 금월봉 서쪽이 됨. 시대바꼴고개【고개】돌이 구르면 시대가 바뀐다는 고개, 일제시대에도 돌이 굴러서 광복이 되었다고 전함. 어동골【골】석동골에 있는 골, 낮에도 골짜기가 어둡다고 붙여진 이름. 역터【터】송내 남쪽 방울이 쪽으로 옛날 역이 있던 마을.75년 모 대학탐사팀이 발굴작업을 했으나 별다른 유적은 없었고 말을 매던 말목이 발견되었다고 함. 옻챙이골【골】석동골에 있는 옻쟁이들이 작업하던 곳. 월-굴(月窟)【마을】→ 월굴리. 월굴리경로당【경로당】석동골에 있는 경로당. 은청골[은점골]【골】석동골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은상회를 하던 골이라고 전함.이-평¹(梨坪)【수몰마을】→ 배나뭇들. 이-평¹(梨坪)【수몰마을】→ 배나뭇들. 이-평²(梨坪)【수몰들】→ 배나뭇들. 입-석(立石)【수몰마을】→ 선돌배기. 자석광산【광산】일제시대 자석을 채광하던 1호-4호의 폐광흔적이 있음. 장구목【고개】장구의 목처럼 생긴 고개. 절매[결매, 결매소, 결매촌]【마을】법개 북쪽에 있는 마을. 옛 하급 행정 기관의 하나인 결매소가 있었음. 평-촌(坪村) 【마을】→ 벌말. 화장골【골】석동골에 있는 골, 시체를 화장하던 곳이라 전함.

월림리(月林里)

[월림. 원림, 원림부곡] 【리】본래 제천군(堤川郡) 남면(南面)의 지역으로서 고려 때 원림부곡(園林部曲)이 있었으므로 원림, 원림부곡 또는 월림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대티리(大峙里)와 청풍군(淸風郡) 북면(北面)의 월림리(月林里) 일부를 병합하여 월림리라 해서 성산면(城山面)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금성면(錦城面)에 편입됨.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시승격으로 말미암아 제원군 금성면 월림리가 되었다가 1995년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가 됨. 골-말【마을】→ 새터 서북쪽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골말경로당【경로당】월림1리 경로당. 남제천 고속도로진입로(인터체인지)【교통】월림 새터에 중앙고 속도로에서 청풍호 쪽으로 이어지는 인터체인지. 달-밭【마을】→ 안월림. 대티-리(大峙里)【마을】→ 새터. 모래재【고개】 진리에서 안월림으로 넘어오는 고개. 반-정(半亭)【마을】→ 새터 서쪽에 있는 마을. 옛 청풍 고을에서 제천으로 가는 관행(官行)의 중간 지점이었음. 반정경로당【마을】월림2리 경로당 새-터 [신대, 한티재, 대티리]【마을】월림리 서남쪽에 있는 마 을. 시대 미상이나 한티재 밑에 새로 이루어진 마을. 신-대(新垈)【마을】→ 새터. 아니고개【고개】 위림에서 안월림으로 통하는 고개. 안-월림( -月林) [달밭]【마을】→ 월림리 서쪽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요한네집【시설】새터에 있는 장애인 요양시설. 1999년 엄기호 설립. 원림(園林)【마을】→ 월림리. 원림부곡(園林部曲)【마을】→ 월림리. 월림(月林)【마을】→ 월림리 정원태고가【고가】 국가민속자료 148호의 옛날 집 콩밭-골【마을】반정 북쪽에 있던 마을, 포옹-신도비(抱翁神道碑)【비】월림리에 있는 포옹(抱翁) 정 양(鄭 瀁)의 신도비. 한전-골【골】큰 절이 있었음. 한티-재¹【마을】→ 새터. 한티-재²【마을】→ 산곡리의 ‘한티재’와 다름.

위림리(渭林里)

[위림리, 우실]【리】본래 청풍군(淸風郡) 북면(北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위곡리(渭谷里)와 월림리(月林里) 일부를 병합하여 윌림리라 해서 제천군 금수면(錦繡面)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금성면에 편입됨.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시승격으로 인하여 제원군 금성면 위림리가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 위림리가 됨. 금수산오이 【특산물】금수산오이 고소득 특산물. 모래-재¹【마을】모래 재 밑에 있는 마을. 모래-재²【고개】우실 서쪽에서 진리로 가는 고개. 모래사태가 많음. 월림못【못】모래재 마을 북쪽에 있는 저수지. 1960년대 축조하 여 벼농사 관개용수로 활용하고 있음. 번니-골【골】우실 서쪽에 있는 골짜기. 아니-고개【마을】아니 고개 밑에 있는 마을. 아니-고개【고개】모래 재 서북쪽에서 봉양면 삼거리로 가는 고 개, 매우 낮아서 고개같지 않아서 아니 고개라 함. 우-실[위곡리]【마을】위림리의 중심 마을. 월림리 원림부곡 터 의 아래가 됨. 위곡-리(渭谷里)【마을】→ 우실. 위림리 경로당【경로당】 1995년 신축 19평정도. 위림산화철광【광산】제철소 용 산화철을 채광하였음. 1980년경 폐광함. KBS중계탑【통신】번늬골 뒷산에 있는 텔레비전 방송중계탑.

적덕리(積德里)

[불근덕, 적덕, 골말]【리】본래 청풍군(淸風郡) 북면(北面)의 지역으로서, 땅이 붉고 언덕으로 되었으므로 불근덕 또는 적덕(赤德)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남산(南山)과 약수동(藥水洞)을 병합하여 적덕이라 해서 제천군 성산면(城山面)에 편입 되었다가, 1917년 금성면(錦城面)에 편입됨.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시승격으로 제원군 금성면 적덕리가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 적덕리가 됨. 곡-촌(谷村)【마을】→ 골말 골-말【마을】불근덕 동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긴-등【언덕】남산 남쪽에 있는 긴 산등성이. 남-산(南山)【마을】남산 밑에 있는 마을. 남-산(南山)【산】적덕리 남쪽에 있는 산. 벼락-바우【바위】긴등에 있는 큰 바위. 벼락을 맞아 갈라졌음. 불근-덕【마을】→적덕리. 약물-깨[약수동]【마을】남산 동북쪽에 있는 마을. 약물깨【우물】남산에 있는 샘.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데 맛이 좋고 약물의 효험이 있다고 함. 약무깨【마을】→ 적덕리. 약수동(藥水洞)【마을】 적덕리,약수동 마을은 옛날부터 우물가에 옻나무가 뿌리를 박고 있으며 뿌리에서 움이 돋아 살고 있다. 마을복판에 우물이 있어 마을의 음용수로 애용되어 왔다. 온 동내 사람들이 물동이로 여다먹으며 생활하여 왔다.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미지근하여 약물의 효험이 있다하여 약물게라는 마을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적덕(積德)【마을】→ 적덕리.

중전리(中田里)

[중전 중리] 【리】본래 청풍군(淸風郡) 북면(北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중리(中里)와 칠전리(漆田里)를 벼합하여 중전리라 하여 제천군 금수면(錦繡面)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금성면(錦城面)에 편입되었다가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시승격으로 제원군 금성면 중전리가 되었음. 1985년 충주댐 수몰로 중전일부 한두실 일부가 남았음.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 중전리가 됨. 계란봉【산】진주 류승미(柳升?)의 신도비가 있는 산. 모양이 계란같다고 붙여진 이름. 고부내【내】배나무들에서 한두실로 가는 길목 쪽으로 흐르는 중전천의 일부. 굴바우등【길】할미대이골. 중전리에서 노사리 골로 넘어가는 비 탈길. 당두광산 【광산】아연광산이었는데 페광됨. 범골【골】본동 서남쪽의 골짜기. 새재골【골】중전리에서 성내리 곰바우로 통하는 골짜기. 어영골【골】중전 남쪽 성내리 쪽으로 넘어가는 깊은 골짜기. 옻밭-골[칠전(漆田)]【마을】중말 북쪽에 있는 마을. 옻나무가 많았다 함. 유생용 고가【고가】한두실에 있었던 고가.지방문화재 86호. 이터【마을】봉골 입구의 평지 일이실(一二室)【마을】→ 한두실. 전나무안【마을】중전과 어영골 중간 마을을 전나무안이라 부름. 절골【마을】중전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이조판서 류승미(柳升湄)의 비석이 있다. 중-리(中里)【마을】→ 중말. 중-말[중리]【마을】중전리의 중심 마을. 포전리와 중전리의 중간이 됨. 중말-들【마을】→ 중말 앞에 있는 들. 중전학교터【학교터】금성초등학교 중전분교가 포전천과 양화천 이 합수되는 지점에 있었음.수몰로 폐교됨. 진주 류씨 신도비【비】계란봉에 있는 진주 류씨 신도비. 비문의 내용은 단양에서 출발하여 청풍으로 가려던 상여가 중전리에 도착하여 쉬었다 다시 출발하려는데 상여가 떨어지지 않아 중도에 묘를 썼다고 한다. 산의 모양이 닭의 머리 형상이기에 비석을 세우면 청년들에게 불행하다 하여 비를 높이 세우지 않고 뉘어 세웠다 함. 가을이면 백여 자손들이 시사를 모신다고 함. 칠-전(漆田)【마을】→ 웃방골. 한두-실[일이실]【마을】중말 동북쪽에 있는 마을. 처음에는 한 두집이 있었다고 한두실로 불리었다 함.

진리(榛里)

[갬골, 갱골, 진동리]【리】본래 청풍군(淸風郡) 북면(北面)의 지역으로서, 개금나무(개암나무)가 많았으므로 갬골, 갱골 또는 진동리(榛洞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진리라 하여 제천군 금수면(錦繡面)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제천군 금성면(錦城面)에 편입됨.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시승격으로 제원군군 금성면 진리가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 진리가 됨. 갬-골【마을】→ 진리. 갱-골【마을】→ 진리. 거북바위【바위】600년전 동네 한가운데 추씨문전에 거북바위가 있는데 입을 벌린 거북바위가 머리가 월림쪽을 향하고 있어 월림의 정기를 먹어 진리마을에 배설한다고 하여 월림 주민이 이를 시기하여 진리 주민 몰래 거북바위의 목을 잘라버렸다. 추씨 일가는 몰락하고 월림 마을 주민이 부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음. 머리는 없고 몸통만 있는 거북바위가 있음. 모래-재【고개】→ 위림리의 ‘모래재’와 같은 곳. 서당-골【골】→ 진리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다 서당골-들【들】→ 서당골에 있는 들. 진동-리(榛洞里)【마을】→ 진리.

포전리(浦田里)

[포전, 개앞, 개앗, 개밭] 【리】 본래 청풍군(淸風郡) 북면(北面)의 지역으로서, 개암나무 밭이 있었으므로 개앗. 개밭, 또는 포전(浦田), 변하여 개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후곡(後谷)과 백석동(白石洞)을 병합하여 포전리라 해서 제천군 금수면(錦繡面)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제천군 금성면(錦城面)에 편입됨.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시승격으로 제원군 금성면 포전리가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가 됨. 가은암산성【성터】까치산성터, 작성산성터, 신라 삼국시대 축조한 것이라는 설이 있으며, 구한말 의병 대장 이강녕이 전투한 곳으로 알려짐. 간이상수도【상수도】심한 가뭄에도 물이 끊기지 않고 마을의 정기를 맑게 해 주는 복된 물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자랑으로 알고 있다. 개-밭 【마을】→ 포전리. 개-앗【마을】→ 포전리. 개-앞【마을】→ 포전리. 갯-골【마을】→ 백석동. 결매-령(結買嶺)【고개】→ 절맷 재. 금강-암(金鋼庵)【사찰】포전리에 있었던 절. 금봉암 【사찰】작성산에 있던 절. 1970년 없어짐. 까치산 【산】→ 작성산. 대-리(大里)【마을】→ 큰 말. 뒷-골【마을】→ 포전 뒤에 있는 마을. 마을수호느티나무【고목】수령300년-400년의 느티나무 두그루를 마을 수호수라고 마을사람들은 믿고 있다, 중앙고속도로 공사로 고사직전 마을에서 살려낸 동문수호수 느티나무와 마을 입구 서낭당 터의 서문수호수가 있다. 박쥐굴 【굴】박쥐굴 1터널 150m 박쥐굴 2터널 250m 수굴 30m였는데 이곳을 중앙고속도로 터널이 통과 970m 터널이 됨. 백석-동(白石洞)[갯골]【마을】큰 말 동쪽 개울가에 있는 마을. 흰돌이 많음. 성산【산】가은산. 성의 터가 있다고 성산으로 부름. 작성산【산】옛산성 터에 까치가 모여 살았다고 까치성으로 부름. 작성산등산로【등산로】포전리에서 성내리 무암계곡으로 이어지는 금성면에서 개발한 등산로 있으나 아직 이용객이 없고 성내리 등산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서울에서 순레등반하는 몇 몇 산악회가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장군바위【바위】일명 넓적바위. 너럭바위. 바위 밑에 장군의 칼이 숨겨져 있다고 전함. 삼국시대 단양과 제천을 경계로 각축을 벌일 때 이 곳을 지나는 고구려 장군의 꿈에 무기를 휴대하지 말것과 전쟁을 삼가라는 계시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무시한 고구려 장군은 전쟁에 패하고 죽음을 당하였다. 그후 신라 장군은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승승 북진하는 때에 자신의 칼을 장굼바위 밑에 묻고 제사를 올리고 진군함으로서 승승장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기반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전등골 【골】포전리의 골짜기. 절맷-재[결매령]【고개】→ 뒷 골 동쪽에서 단양군 적성면 상원 곡리로 가는 고개, 옛날에 이곳을 가마가 넘으면 마을에 재앙이 생긴다고 하는데도 중앙관리가 억지로 넘다가 죽음을 당하였다고 함. 그후로 마을에서 제사를 올리고 가마의 통행을 막았다고 함. 지당【당】마을에서 산천고사를 지내던 곳. 당집은 없고 고목이 울창함. 큰-말[대리]【마을】포전리 중간에 있는 큰 마을. 포-전(浦田)【마을】→ 포전리. 포전리경로당【경로당】문화생활관 회관. 후-곡(後谷)【마을】→ 뒷골.

활산리(活山里)

[살미,활산,시산,거산, 전산]【리】본래 청풍군(淸風郡) 북면(北面)의 지역으로서, 국사봉(國思峰) 밑이 되므로 살미 또는 거산(居山), 활산(活山)이라 하였으며, 누서가 있으므로 살미, 전산(箭山), 시산(矢山)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조왕곡(朝王谷),자장리(慈藏里), 안간리(安間里)를 병합하여 활산리라 해서 제천군 금수면(錦繡面)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제천군금성면(錦城面)에 편입됨. 1980년 4월 1일 제천시 시승격으로 제원군 금성면 활산리가 되었다가 1995년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 활산리가 됨. 고려 때 전산소(箭山所)가 있었다 함. 거산(居山)【마을】→ 활산리. 국사봉(國思峰)【산】금성면 활산리 안간이와 청풍면 장선리 봉양읍 구곡리의 3면 경계지점을 이루는 근방에서 최고봉임.조선 단종의 충신 유 안례의 행적으로 인하여 국사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점함. 노적-바우[큰 노적바우]【바위】절안에 있는 바위. 모양이 노적처럼 보임. 당-고개【고개】→ 땅고개. 땅-고개[당고개]【고개】→ 살미 동쪽에서 월굴리 석동거리로 가는 고개. 사낭당이 있음. 돌고개【고개】자재기에서 안간이로 넘는 고개. 고개를 오르며 돌 한 개씩을 날라다 돌탑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음. 막-골【마을】→ 자재기 마을 동쪽 막바지에 있는 골짜기 마을. 블근 더기【산】→ 자재기 서쪽에 있는 산. 흙이 붉음. 살-미¹【마을】→ 활산리. 살-미²[시산]【산】활산리에 있는 산 생긴-양지[서근양지]【마을】→ 살미 서쪽에 있는 마을. 서근-양지(西近陽地)【마을】→ 생긴 양지. 설지른 구뎅이【골】막골 위에 있는 골짜기. 명당혈이 있다 하여 큰 인물이 나지 못하도록 무쇠 말뚝을 박아 혈을 질렀다 함. 성지산업【광산】 1996년 개광, 활산리567 소재. 고토비료 생산. 시-산¹(矢山)【마을】→ 활산리. 시-산²(矢山)【산】→ 살미 산. 안간-리(安間里)【마을】→ 안간이. 영광이개산업【광산】1999년 개광. 오봉산(五峰山)【산】→ 살미 자재기 안간이 중간에 있는 다섯 봉우리 산. 오봉산을 중심으로 삼동이 나누어짐. 은행나무【고목】안살미에 있는 수령 500년의 은행목.단종시대 충신 유안례가 심었다고 전함. 은행나무 아래 제단이 묻혀 있고 해그림자로 시간을 재는 시계그림이 새겨진 돌이 묻혔다고 전함. 응골고개【고개】안간이에서 마곡으로 넘어가는 고개. 자루봉【산】자재기 뒷산. 자자기[자장리, 자작리]【마을】→ 살미 북쪽에 있는 마을. 자장 사가 있었으며 강릉 유씨 재실 자장재가 있음. 자재기【마을】→ 활산리 일부 자자기 마을. 자작리(自作里)【마을】→ 활산리. 자장리(慈藏里)【마을】→ 활산리. 자장리(自藏里)【마을】→ 활산리. 자장사-터(慈藏寺-)【터】→ 자재기 북쪽에 있는 자장사의 터. 자장재(慈藏齋)【사당】강릉 유 씨 의 중시조 유 안례이하 누대를 모시는 재실, 음력 시월 초 시제를 올리고 있음. 작은 노적바우【바위】→ 노적바우 밑에 있는 바위. 노적바위에서 벼락을 맞아 떨어져 나온 조각이라 함. 전-산(箭山)【마을】→ 활산리. 절-안골【마을】→ 자재기 북쪽에 있는 골짜기. 자장사의 터가 남았음. 조왕골(朝王-)【마을】→주앙골. 중안-골(中安-)【마을】→ 살미 서쪽에 있는 마을. 주앙골【마을】→ 살미 서쪽에 있는 마을. 큰 노적바우【바위】→ 노적바우 활산(活山)【마을】→ 활산리. 황골-고개【고개】→ 생긴 양지에서 황두리 황골로 가는 고개. 장수바우【마을】→ 자재기 북쪽에 있는 바위. 바위의 패어진 형 태에서 장수가 나왔다는 전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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