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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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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영당 소개

자양영당(紫陽影堂)
자양영당(紫陽影堂)
충청북도 기념물 제37호 (봉양읍 공전리)
1950년대 자양영당
1950년대 자양영당
"자양영당"은 구한말 쓰러져 가는 나라를 바라보며, 한 목숨 바쳐서 풍운을 막아보고자 분연히 일어섰던 "조선 의병"의 넋이 흐르는 곳으로서 굽이굽이 예순 굽이길의 박달재를 넘어, 제천시의 관문에 나지막이 자리잡은 곳이다.언뜻 보면, 평범하고도 아늑한 고을 한 쪽에 모셔진 사당과 같은 느낌이 들지만 촘촘히 살펴보면 역사의 뒤안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범상치 않은 기운이 스며 있는 곳이 바로 자양영당(紫陽影堂)이다.
자양영당 내부 모습
자양영당 내부 모습
건물구조는 목조기와집으로 전면 3칸, 측면 2칸이며 앞에는 뒷마루가 있는 팔작집이다. 자양영당은 습재 이소응과 화서학파 유림들에 의해 건립 되었다. 그 해 주자 우암 송시열, 화서 이항로, 성재 유중교의 영정을 모셨다. 후에 의암 유인석과 습재 이소응의 영정을 추봉하고 매년 후손과 유림들이 모여 제향을 지내고 있다.

자양영당 제향모습

  • 춘향제(春香祭) : 음력 3월 20일
  • 추향제(秋享祭) : 음력 9월 20일
자양영당 재향모습
자양영당 재향모습

자양서사(紫陽書祠)

자양서사(紫陽書祠)
자양서사(紫陽書祠)

조선말기의 유학자인 유중교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889년(고종 26)에 세운 서당이다, 1895년(고종 32) 을미의병 당시 의암 유인석 선생께서 모친상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유림들과 처변삼사를 논의 하던 곳이다.

처변삼사 (處辯三事)

  • 거의소청(擧義掃淸)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소탕하는 것
  • 거지수구(去之守舊) :국외에 망명하여 도맥(道脈)을 계승하는 것
  • 자정치명(自靖齒命) :조용히 자결하는 것

자영서사 현판

자양서사 왼쪽현판
자양서사 왼쪽현판
안연이 인에 대하여 여쭈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오는 것이 인이다. 예가아니면 보지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행하지 말아야 한다. 회가 비록 불민하오나, 청컨대 이 말씀을 깊이 새겨 지키겠습니다.- 출전「논어」
자양서사 오른쪽현판
자양서사 오른쪽현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로서 널리 배우고, 예로서 요약한다면 역시 도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다. - 출전「논어」

숭의사(崇義祠)

숭의사(崇義祠)

자양영당 정비사업 일환으로 제천의병의 넋을 기리고자 조성하였다. 사당 내부에는 호좌창의진의 깃발과 조선말13도의군도총재의암유선생휘하제현신위을 봉안하고 조선말 의암선생을 비롯하여 13도의 의병의 넋을 기리고자 매년 10월 제천의병제 행사 시 고유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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